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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없던 사람 이야기 4

커리어 카운셀링

by 리딩 라이프 2025. 3. 2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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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기 전 나는 같은 학교의 식품영양학과 교수님의 제안으로 그 학과의 조교로 일하기로 했다.

말이 안되는 것이 당시는 그렇게 싫어하던 학교를 더 다녀야 하는데도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취업이 바로 안될 것 같고 뭔가 조교라는 것이 만만해 보였던 것 같고 제안을 해주신 교수님이

고맙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중에 조교가 되서야 그 여자 교수님이 고약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바보.....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고 싶었고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도 안했는데 따로 취업준비를 했을리가 만무하니

아마 딱히 취업자리가 없었지 않았을까...

그떄 아빠는 대학원을 가라고 하셨지만 대학원은 공부에 미친 사람이나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완강하게 싫다고 했다.

 

조교생활은 비교적 재미있었다.

학생들과 관계가 좋았고 학과 학생들이 나를 너무 좋아해줬다.

나는 인기있는 조교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니 내가 선생이 될 팔자라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그리고 조교선생들과도 많이 어울렸다.

내가 처음으로 스키를 배운 것도 조교들과 함께 간 워크숍이었다.

정말 재미있게 지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때의 사람들과는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 조교일을 2년동안 했고 그 경력이 한번도 쓸모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에서야 비로서 그때의 경력이 감사한 일이되었다.

조교를 했던 것이 사학연금에 기간이 산정되었다. 

퇴직금 산정에 근무기간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기 떄문이다.

뭐든 하면 쓸데가 있는 법인 것 같다.

 

이후에 나는 나름 규모있게 학원을 운영하던 오빠를 도와주게 되었다.

학원이 아주 잘됐었는데 원장이던 오빠가 학원에서 번 돈을 교육에 관련된 신문(교차로같은 것이었다) 교육세계? 아무튼 그런 것을 만들어서 찍어내는데 돈을 썼고 그것은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았나보다.

 

학원이 어려워질 지경이 되어 도와주러 갔다.

나는 월급을 받지 못하면서 일을 도와줬고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 수학을 가르쳤는데

인기가 좋아서 몇 명 안되던 반을 정원이 꽉차게 만들었다.

그러게... 나는 선생 팔자 맞네...

학원에 있으면서 결혼을 하게 됐는데 그 꼬맹이들이 축하해주러 결혼식에 우르르 몰려왔었다.

지금 그놈들은 어떻게 성장했을지 궁금해진다.

 

내가 선생이 되었으면 좋았을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때도 나는 몰랐다.

그냥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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